(북소리 제 738호) 보이지 않게 되자 보이는 것들!
북구마을자치도시재생센터
2024-09-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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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눈이 점점 침침하다. 올해 들어 심하다. 작은 글씨는 도통 안 보인다. 순전 나이 탓이다. 깨알 같은 글씨로 누군가 나에게 편지를 쓴다 한들 읽을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이 나쁜 것만도 꼭 아니다. 보지 않아도 될 일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것이 첫째로 좋다. 티끌이 안 보이니 남의 흠을 물어낼 일이 줄어든 게 둘째다. 어지간한 글이 아니고서는 읽을 엄두를 내지 않으니 교만 떨지 않게 된 게 셋째다. 책을 대신해 마당에 핀 흰 민들레 꽃잎을 센다든가, 문밖에서 비 맞는 자주달개비꽃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 게 넷째다. 무엇보다 책을 과감히 버려도 집착하는 마음이 딱 끊어진 게 다섯째다. 그밖에도 좋은 게 부지기수다. 물론 불편한 게 왜 없을까. 하지만 그마저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예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극복해 버린 이들이 예술에 매진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일로 눈뜬 자를 깨우치는 분들이 있어서다. 게다가 볼 꼴 못 볼 꼴을 보고 산 친구가 옆에 있질 않은가. 복숭아를 유난히 좋아해 그 빛깔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이를 잊고 꽃처럼 환해지는 여인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다는 것에 집착할 일은 꼭 아니다.
얼마 전 호남 유일의 시전문지 ‘시와사람’ 여름호(통권 제112호)에 십 년여 만에 시를 발표했다. 앞서 말한 바대로 눈도 보이지도 않는데, 그나마 시를 읽지도 않는 세상을 향해 시를 발표했으니 얼마나 무망하기 짝이 없는 일인가 싶다. 잡지 한 권이 제대로 팔리지 않는 세상이니 말이다. 1996년에 창간해 30년 가까이를 지역과 함께 호흡한 ‘시와사람’은 맏형 같다. 시와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와 시인’을 품어 주고 있다. ‘시와사람’을 통해 2010년 등단해 문단 활동을 본격화한 필자에게 ‘시와사람’은 이른바 모지(母誌)다. 그럼에도 등단 이후 문학계에 눈감고 산 세월이 14년이나 흘렸다. 모처럼 만의 작품 발표 기회를 열어 준 것은 시로서 세상을 보는 일에 눈감지 말라는 맏형의 호된 죽비였다고 생각한다. 육안이 어두워지는 것을 탓할 게 아니라, 시인으로서 타자의 삶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것. 첫 시집에 수록된 시 ‘삶의 무게’도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작품 중 하나다.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는 어느 어르신의 모습을 담은 시다. “삶이 얼마나 무거워져야 가벼워지는지 모르는/ 허리 굽은 이가 저울 위에 그의 전부를 올려 놓는다.
햇빛 환한 마당에는 좀 더 무거워야 가벼워지는 삶이 순해진다.”(필자의 시 ‘삶의 무게’ 일부)고 했던 청년 시인의 눈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 마침 기회가 왔다. 지난 8월 초 운암3동 주민자치회 산하에 ‘황계독서동아리’주관으로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 초대된 것. 그 자리에서 필자는 참석하신 주민께서 손수 만든 팥양갱과 마주하게 되었다. 팥색의 장미꽃 문양을 한 팥양갱은 딱 봐도 예술품이었다. 지난봄에 꽃구경 못간 것이 이 꽃 보려고 그랬나 보다. 젊은 날에는 꽃을 찾아다닌다지만, 나이 들면 마음속 꽃밭 한 평에서 꽃과 나비를 봐야 한다. 이같이 나이를 뛰어넘어 청년의 눈을 가진 이가 곧 시인이다. 밖을 보려 애쓰는 일만이 아니라, 내 안을 보는 일까지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비로소 시인이다. 이제 좀 보인다
얼마 전 호남 유일의 시전문지 ‘시와사람’ 여름호(통권 제112호)에 십 년여 만에 시를 발표했다. 앞서 말한 바대로 눈도 보이지도 않는데, 그나마 시를 읽지도 않는 세상을 향해 시를 발표했으니 얼마나 무망하기 짝이 없는 일인가 싶다. 잡지 한 권이 제대로 팔리지 않는 세상이니 말이다. 1996년에 창간해 30년 가까이를 지역과 함께 호흡한 ‘시와사람’은 맏형 같다. 시와사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와 시인’을 품어 주고 있다. ‘시와사람’을 통해 2010년 등단해 문단 활동을 본격화한 필자에게 ‘시와사람’은 이른바 모지(母誌)다. 그럼에도 등단 이후 문학계에 눈감고 산 세월이 14년이나 흘렸다. 모처럼 만의 작품 발표 기회를 열어 준 것은 시로서 세상을 보는 일에 눈감지 말라는 맏형의 호된 죽비였다고 생각한다. 육안이 어두워지는 것을 탓할 게 아니라, 시인으로서 타자의 삶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것. 첫 시집에 수록된 시 ‘삶의 무게’도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작품 중 하나다.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는 어느 어르신의 모습을 담은 시다. “삶이 얼마나 무거워져야 가벼워지는지 모르는/ 허리 굽은 이가 저울 위에 그의 전부를 올려 놓는다.
햇빛 환한 마당에는 좀 더 무거워야 가벼워지는 삶이 순해진다.”(필자의 시 ‘삶의 무게’ 일부)고 했던 청년 시인의 눈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 마침 기회가 왔다. 지난 8월 초 운암3동 주민자치회 산하에 ‘황계독서동아리’주관으로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 초대된 것. 그 자리에서 필자는 참석하신 주민께서 손수 만든 팥양갱과 마주하게 되었다. 팥색의 장미꽃 문양을 한 팥양갱은 딱 봐도 예술품이었다. 지난봄에 꽃구경 못간 것이 이 꽃 보려고 그랬나 보다. 젊은 날에는 꽃을 찾아다닌다지만, 나이 들면 마음속 꽃밭 한 평에서 꽃과 나비를 봐야 한다. 이같이 나이를 뛰어넘어 청년의 눈을 가진 이가 곧 시인이다. 밖을 보려 애쓰는 일만이 아니라, 내 안을 보는 일까지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비로소 시인이다. 이제 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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